일상에서

[G20]10만 고시 낭인의 열망과 절망의 땅 신림

나만의 향기 2012. 3. 5. 22:43

# 신림동 김장원 씨의 열망

‘합격증을 가지고 당당히 나가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나가리라’

“○○시험 합격” 김장원(가명) 씨의 열망이었다. 그 또래의 20대가, 합격을 목표로 신림동에 들어오듯 김장원 씨도 부푼 꿈을 안고 신림동에 짐을 풀었다. 열정, 도전정신 그리고 약간의 허영심과 미래에 대한 불안도 함께. 하지만 불안 따윈 떨쳐버려야 한다. ‘이성으로 절망하더라도 믿음으로 낙관하라’지 않던가. 로또를 사는 데에 확률이 몇백만 분의 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당첨자가 있다는 사실과 자신의 당첨을, 합격을 굳게 믿는 자세다. 삽 하나 들고 한반도 대운하를 팔 기세로 비장한 결의를 하거나 말거나 합격자 수는 정해져 있지만, 아무튼 사회적으로 성공한 멘토들이 긍정적인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니 그렇게 믿도록 하자. “네 성공을, 네 열정을 믿으라!” 20대에게 강매된 긍정 이데올로기는 이제 실패는커녕 실패에 대한 생각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대(大) 고시의 시대. 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 기술고시, 법원행시, 변리사, 법무사, 감정평가사, 노무사, 회계사, 각급 공무원 시험 등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시험과 그보다 수천 배는 더 많은 젊은이가 시험 합격을 목표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레이스에 뛰어든다. 인생역전의 한 방을 찾는 사람부터 그저 안정된 직장을 찾으려는 사람까지, 수험생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모두의 공통적인 소망은 합격이다. ‘동차 합격’ 식당, ‘합격의 ○○학원’, ‘합격 치과의원’ 여기저기 들어선 '합격' 간판이 보여주듯, 수험생은 말할 것도 없고 식당 주인부터 치과 의사마저도 합격에 대한 열망이 강물처럼 흐르는 그곳. 통칭 ‘고시생’들의 집결지인 신림동이다.

 

 

# 고시촌, 고시생, 서울대, 헌책방, 고시원, 순대촌, 싼 물가

신림동을 떠올릴 때 흔히 따라붙는 위의 말들은 신림동의 특성을 한 번에 보여준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은 까닭에 고시 식당이나 헌책방처럼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가게가 거리마다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리 모아둔 돈이나 부모님께 받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수험생들의 대부분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다. 그래서인지 다른 대학가와 비교하더라도 신림동 물가는 유달리 싼 편이다. 곳곳에 값싼 PC방이 널려 있고 4천 원에 DVD 방엘 갈 수도, 2000원으로 괜찮은 과일 주스를 사서 마실 수도 있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이 결정되면서 사법시험이 단계적으로 폐지됨에 따라 사시 준비생이 빠져나가고 가난한 자취생이나 직장인이 모여들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신림동의 이미지는 예전 그대로 남아있다.



# 활기찬 대학가, 칙칙한 신림동?

같은 20대 대학생들이 모이는 장소지만 신촌, 홍대, 대학로 등 다른 대학가와 신림동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다른 대학가 젊은이들이 한껏 꾸며 입은 옷과 발랄함으로 거리를 가득 채우는 반면 신림동의 젊은이들은 짙은 색의 추리닝이나 청바지를 유니폼처럼 입고 다닌다. 거리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만 보면 전혀 딴판이지만 위의 둘이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대학생 집단은 아니다. 불타는 금요일의 홍대 밤거리를 전공 수업 가듯 하던 친구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신림동으로, 노량진으로, 고시반으로, 도서관으로 사라진다. 언제 시작하느냐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신림동뿐만 아니라 취업의 문턱 앞에 서 있는 20대가 모인 곳은 어디나 고시 판으로 변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을 상징하는 조형물 <비상>



# 다시, 김장원 씨의 절망

“사람답게 살고 싶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김장원 씨가 짧게 대답했다. 지금의 삶은 사람답지 않다는 뜻이리라. 고시생에게 있어 신림동은 유일하게 ‘존재가 허락되는 공간’이다. 인간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며 자조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표현했지만, 그 인간 이하의 삶마저도 신림동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친척들이 모인 집에서도, 친구들과 모인 술자리에서도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그나마 합격생에게 신림의 기억은 젊은 시절 고생했던 추억 혹은 치열했던 청춘의 자랑스러운 기록으로 남겠지만 결국 김장원 씨에게는 경력에서도 기억에서도 지우고 싶은 ‘삶’이 되었다. 예상했겠지만 김장원 씨는 장원급제에 실패했다.

# 20대도 20대를 위로하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끝났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가 더 힘들어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극소수의 ‘개천표 용’이 각종 사회적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끝내 승천한다는 성공 신화는 반복될 것이다. 지난 18일과 25일엔 각각 사법시험 1차 시험과 5급 공채(구 행정고시)가 있었다. 시험은 계속 이어진다. 늘 그랬듯이 몇몇은 승천해서 용이 되겠지만 대개는 눈물을 삼키며 개천의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아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개천에 남아야 하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어버리거나 알면서도 외면한다. 세상이 원래 그렇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몰라서 하는 소리도 아니요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나 혁명의 깃발을 들라는 소리도 아니다. 다만 우리 세대의 열망과 절망이 있는 곳에 어떤 삶이 있고 어떤 고통이 있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미래를 위해 저당 잡힌 현재에는 위로받을 삶이 없다. 미래에는 나아지리란 막연한 기대만이 있을 뿐이다. 성취라는 한 줌의 만족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자기 삶과 자기 존재를 부정해야 하는 걸까. 승천한 용이 모두 떠난 개천에서 우리는 공감할 능력을 상실한 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날을 세우기 바쁘다. 신림동의 20대는 아무도 위로하지 않는다.

강동경/인터넷 경향신문 대학생 기자(웹場 baram.khan.co.kr)

[꼴값어워드] 우리 사회 최고의 꼴값을 찾습니다.
3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 분야에서 가장 꼴값을 떤 인물 한 명을 추천해 주세요.
결과는 경향닷컴 내 웹장(baram.khan.co.kr)에 게재됩니다.
- YeSS(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꼴값어워드 선정위원회 "꼴값이 씨가 마르는 세상을 꿈꾸며"
아래 링크를 눌러, 설문에 참여해주세요^^
이달의 꼴값!! 투표하기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 성매수 들통난 공무원들… 핑계가 가관
▶ [단독] 아이 얼굴에 화상… 국물女 결국
▶ 3대 가족 사망사건… 범인 잡고보니, 경악
▶ “내 애인이 야한 영화에…” 톱스타 결별 충격
▶ “급한데 휴대폰 좀…” 빌려줬더니, 황당

모바일 경향 [New 아이폰 App 다운받기!] |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 [미투데이] [페이스북] [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일상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야기  (0) 2012.03.08
신앙  (0) 2012.03.05
작가 최인호 베드로의 암투병기 ⑨  (0) 2012.03.02
서른다섯까지는 연습이다  (0) 2012.03.02
오늘의 명언  (0) 2012.02.21